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현대인 천재론 (문단 편집) ==== 전략전술의 문제 ==== 현대의 과학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순수한 전쟁 기술만을 전파하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쉽지 않은 문제인데, 현대인이 현대 과학 기술을 배제한 전략전술을 수립하는 것 부터가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자동차, 철도, 고속철도, 항공기를 이용한 생활에 익숙하기 때문에, [[행군]](도보) 하나를 제외하면 과거의 교통수단에 대한 이해력 자체가 없다. 병사들이 행군, 마차(수레), 수송트럭, 철도를 이용해 4시간 가량 이동한 후, 전투를 하는 상황을 상정하면 간단하다. 행군보다는 마차, 마차보다는 트럭, 트럭보다는 철도가 훨씬 병사의 체력을 온존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이 차이는 곧 '''[[공세종말점]]의 한계'''와 이어진다. 화장실도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고, 좌석도 편안한 기차를 이용한 병사들은 하차 후 즉각적인 전장 투입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행군, 마차를 이용해 이동했다면 오랜 보행, 지속적 진동으로 인한 멀미로 인해 병사들은 이동과정에서 전투력을 손실할 것이다. 이것이 회복되기 전까지는 전장 투입이 어렵고, 설령 투입하더라도 원래의 퍼포먼스를 발휘할 수 없다. 마차를 본 적조차 없는 현대인이 이렇게 세부적인 사항까지 배려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과거의 전략가 보다 뛰어난 군사적 역량을 보여 줘야 말을 들어주는 시늉이라도 할 것인데, 고등학생은 물론 대한민국의 직업 군인조차 실전 경험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 그나마 실전과 가장 비슷한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KCTC]] 훈련만 봐도 명백히 알 수 있는데, 평소 훈련을 밥먹듯이 해와서 짬밥이 쌓이고 쌓인 고급 장교 및 지휘관([[대대장]] 이상 급)조차 우왕좌왕하며 부대 통솔력을 상실하고, 산발적 기습에 보급로가 털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갈대대 전투원의 전투력이 일반 병사대비 높고, 지형적 이점도 큰 것이 사실이지만, 거의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이다. '''애초에 군사적 지휘는 일반인이 맡을 영역이 아니다.''' 군대의 통솔권은 가장 믿을만한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며 군권을 얻는다는것은 핵심 권력층이라는 것인데 '''누구인지도 모르는 자에게 군권을 맡길 리가 없다.''' 게다가 그렇게 어거지로 맡겨진 군권에 병사들이 목숨을 걸고 명령을 실행해 줄지도 알수 없고, 군의 장교들은 엘리트 집단인데 지휘권이 듣보잡 이계인에게 떨어진걸 장교들이 용납 할 수 있을까? 게다가 장거리에서 투사무기로 전쟁을 치르는 현대전과 달리 냉병기 시절의 전쟁은 적군과 얼굴을 맞대고 냉병기로 치며 부수고 잘라내며 [[내장|순대]]가 쏟아져 나온다. 성인들도 맨정신으로 버티기 힘든 상황이고 투사무기를 쓰는 현대전에서도 전투에 참가한 병사들은 물론 지휘관들조차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림을 상기하자. 전투지휘소에서 지휘만 하더라도 중세의 전투지휘소는 전장 바로 코앞에 설치하는 때가 매우 흔하다. 이러다보니 지휘관이 직접 전투에 참가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고 지휘관 경호/근위 부대가 일종의 예비대 개념으로 동원되기도 했다. 비전문가인 고등학생이 생각하고 구사할 전술이라면 그 세계의 장군들이 이미 쓰고도 남았을 전술일 가능성이 높다. [[손자병법]]으로 유명한 [[손무|손자]]는 기원전 500년 경의 사람이다. 병법, 군사학은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라 가장 열심히 학습하고 베끼려고 하는 분야의 학문이다. 상대가 몰고 온 어떤 병종이나 작전에 말려들어 패퇴했다면 당연히 '''베낄 수 있는가''', 어떻게 견제할 수 있는가, 약점은 과연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끼지 못했다면 병사의 훈련도, 병과의 부재, 무기 체계, 정치적 상황 등 여러 현실적인 문제 때문인 것이다. 작전을 할 수 있도록 체계를 구축하는 건 행정의 영역이다. 당연하지만 행정은 절대로 쉬운 것도 아니고 오히려 작전 이상으로 복잡하며 어렵다.[* 현대적인 [[행정학]]은 20세기에 와서야 탄생했다.] 근세 이전까지 [[기병]]이 맹위를 떨쳤던 것은 당시 삼척동자라면 다 알고 있던 사실인데[* 당장 중세 초기부터 훈족, 아바르족, 마자르족 등의 유목민족이 중부 유럽까지 들어와 투닥거렸고, 유목민이 가진 가장 강력한 전투력은 궁기병의 [[스웜 전술]]에서 비롯되었다. 이 중 마자르족은 아예 동유럽에 정착해 궁기병에서 유럽식 중기병 전술로 바꿔나갔다. 그리고 유럽인들도 십자군 전쟁으로 중동에 진출해서는 현지 용병들을 고용해 궁기병을 운용하기도 했다.] 왜 '''알면서도''' 기병전력을 키우지 못했는가를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이다. 말이 비싸고 유지도 어려우며, 고등 기마술은 전업 군인(기사)이 아니면 배울 수 없을 정도로 학습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반면 [[유목제국]]은 유목생활에 말과 기마술, 기마궁술이 필수였으니 우월한 기병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고, 중세 전장의 패자로 군림했던 것이다. 고대 아테네의 [[팔랑크스]]들이 다른 전략을 쉽게 사용하지 못한 것도 당시 시대적 한계 때문이다. 꽤 최근(근세)까지만 해도 엄격한 군율을 통해 밀집대형을 유지하는 것이 보병 운용의 상식이었다. [[냉병기]]의 한계 때문에 보병은 강력한 충격력과 공격력을 내기 어려웠고, 따라서 '''방어력을 높인 쪽'''이 훨씬 우세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기동성에서 엄청난 손실을 입는 것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팔랑크스를 운용했던 것이다. 결국 팔랑크스를 깨뜨리려면 [[망치와 모루|망치]]인 기병이 필요했고, 이걸 잘 해서 연전연승한 [[알렉산드로스 3세]]는 대왕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현대인의 기준은 현대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서는 상상력과 인지력이 부족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전쟁과 무기에 대한 이해도, 시행착오를 미리 알고 있다면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이것도 문제가 있다. '''무기는 일단 잡아봐야 안다.''' 현대의 자동소총도 탄 하나에 교리가 움직인다.[* 5.56mm 를 널리 사용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에 맞게 전술과 교리가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화기가 제법 발달한 [[근세]]에도 유럽국가들은 전열보병을 이용해 [[라인배틀]]을 벌였고, 서로 사격권을 양보하는 촌극을 벌이기도 했다. [[수류탄]] 한방으로 몇 명씩 쉽게 날려버리고, [[자주포]]에서 발사된 155mm 포탄 하나가 [[축구장]] 단위 살상반경을 가진다는 것을 알고, 산개 및 은엄폐를 보병의 기본 전술행위로 생각하는 현대인들이 이런 막장 환경에서 얼마나 역할을 할 지는 미지수이다. [[라인배틀]]의 시대에 기병, 포병을 적극 활용해 정교한 제병합동전술을 써서 세계의 패자에 오른 이를 우리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라고 부른다. 통신의 한계 때문에 하위 지휘관이 자율적으로 움직이되 자기가 생각한 대로 하기 위해서 하위부대까지 전부 전략관과 전술관을 일치시켜야 한다. 그리고 어느 시대나 군대는 가장 보수적인 조직이다.[* 학문 습득에 있어선 가장 진보적인데, 체제 유지나 습득한 학문의 적용에 있어선 제일 보수적이다.] 즉 바꾸어도 검토와 대안 등을 이리저리 신중히 따져보고 합격판정을 내려야 바뀐다는 이야기이다. 설령 병사의 훈련, 병과, 무기체계 등을 전부 현대와 비슷하게 군대를 만들더라도, 탈주율이 엄청났다는 사실까지는 어찌할 수 없다. 자칫했다가는 먼치킨급 화기를 든 놈들이 무더기로 탈영해서 먼치킨급 무기를 든 패잔병이 되어 지역 치안을 나락으로 떨어트릴 수도 있다. 여기에 더하여 고대나 중세면 육체적 힘이 센 사람일수록 보통 전장에서 가장 강력한 발언권을 얻었다. 고도로 발달된 무기와 장비를 운용하는 현대의 군대에서도 체력은 여전히 전투력을 평가하는 데 간과해선 안될 중요한 요소이며 이 때문에 병사들의 기초 체력 관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검과 창으로 백병전하던 시대라면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진 않다. 이런 맥락에선 차라리 소드마스터를 기본으로 깔고 가던 한국산 양판소가 개연성이 있을 지경이다. 중국의 삼국지연의만 보더라도 책사는 명문가 출신의 아주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면 장수가 조언 한번 정도 뽑아내는 사람 신세로 전락한다. 삼국지의 유명한 책사들인 [[제갈량]], [[사마의]], [[순욱]], [[주유]] 등은 실제로 당대 명문가 출신들이다.[* 그나마 저 중에서 가장 가문의 급이 떨어지는게 제갈량인데 중앙의 고위벼슬을 역임한 사람들을 배출한 가문 출신인 다른 세사람보다 가문의 급이 높지 않고 그나마도 본거지 서주에서 형주로 이주한 가문이기 때문이다. 제갈량의 숙부 제갈현부터가 형주에 이주한 후 가문들과 인척 관계를 맺고 당대 이름난 선비인 사마휘 휘하에서 제갈량의 준걸한 능력을 보여줘서야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고 한창 농사일을 하고 있던 제갈량을 유비가 찾아와 등용했다. 식자 계층인 제갈 가문조차 이런식으로 열심히 인지도를 쌓고 노력했는데도 이랬는데 현대인이 거기서 혈혈단신으로 명성을 쌓고 책사로 등용된다는게 어불성설이다.] 게다가 이렇게 잘나가는 1등급 책사도 자신의 조언이 잘못되면 순식간에 목이 날아간다. 게다가 애초에 삼국지연의 자체가 문사들이 구성한 곳이 많아 실제 역사보다 책사의 비중을 크게 놓았다. 원래 책사를 고용하는 까닭이 작전 실패시 주군 대신 책임을 지우기 위해서라는 말도 있다. 따라서 출신이 불분명하고 힘도 기준치 이하인 비리비리한 사람의 말이 아무리 옳아도 발언권이 보장되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고, 어쩌다가 지휘관의 눈에 들어서 책략을 조언해도 실패하는 순간 바로 신용을 잃어 패전의 원인으로 찍혀서 목에 칼이 날아오는 참변을 겪기 십상이다.[* 그리고 제갈량, 사마의, 순욱, 주유 중에 흔히 생각하는 책사 같은 사람은 사실 한 명도 없다. 제갈량은 재상 노릇에다 유비가 출전할 경우 본거지 방어 및 보급을 했고 유비 사후에는 원정군 총사령관까지 했다. 순욱도 제갈량과 비슷한데 무관 노릇은 본거지가 털렸을 때 잠깐 했다는 정도의 차이뿐이다. 사마의는 문관으로 시작해서 이후 필요할 때마다 사령관으로 중국의 동서를 누볐다. 주유는 실제로는 그냥 장군이다.] 또한 애초에 전술의 수립이란 전장의 형태를 판단할 안목과, 그러한 지형에서 적이 어찌할지를 대충 예측한 뒤에 수렴해야 마땅한데, 이러한 안목은 경험으로 익히니 현대사회에서 건너갈 대다수의 사람들이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전투 자체가 일종의 도박이고 팽팽한 전장에서 한순간에 판단이 전황을 가르기에 전쟁터에서 몇 년씩 구른 장군이나 무패행진을 해온 명장 소리 듣던 인물도 한순간 실수로 훅 가버린다. 역사상 난다 긴다하는 장군 중에서도 실수나 패전을 한 사람이 부지기수다. 그런 마당에 아무 기반도 없거나 징병제 국가 기준 최하급 수준의 군사교육만 받은 사람이 역사프로그램이나 뉴스프로그램에서 얻은 지식을 가지고 허튼 짓 하면 목 날아가는 곳이 전장이다. 현대인으로서의 기본 지식은 말단부터 시작해 천천히 경험치를 쌓아 나갈 때야 도움이 되겠지만, 평범한 지능에 어설픈 지식으로 전쟁을 지휘한다면 또 한 사람의 '''[[마속]]'''으로 남게 될 뿐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